협동조합 지역신문 만들기 마지막 강좌

Jul 30


협동조합 지역신문 네 강좌가 끝났습니다.

강좌는 끝났지만 모임은 이제 시작입니다.


1


2


3


4


5


6


7


8



모임의 첫 시작, 각자가 생각하는 협동조합 지역신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성재
청소년이 열악한 상황에 있는데요. 그런 청소년들에 대해서 어떤 언론도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부천에 지역신문이 라면 청소년들의 삶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신문이면 좋겠어요. 그리고 부천교육에 대한 그런 이야기들을 지역주민들하고 나누면, 지역주민들도 교육이란게 저런거구나, 저런 교육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하고자 하는 교육도 광고하고 그를 통해서, 독자도 확보하고 투자도 받을 수 있고, 이런 방향으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박혜숙
안녕하십니까. 저도 사실은 학교에서 25년 명예퇴직을 하고 지금 청소년을 대상으로 상담연구소를 운영하고 있거던요. 저도 제 오로지 생각은 청소년의 삶의 질을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을까. 그렇게 했을 때 성재 선생님 이야기처럼 그 영역이 너무나 소외 되어 있다는 거, 언론이던 어디서던…단지 각광을 받는 곳은 돈이 되는 곳만 그러니까. 그래서 정말 소통이 이루어지고 거기에 주인공으로 청소년들을 좀 세워서 정말로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우리가 어른들이 도와줄 수 있는 건 어떤게 있는지, 그리고 사실 좋은 것들도 많이 있는데 더 향상되지 못하고, 몰라서 넘어가고 그게 또 묻혀서 더 비용이 커지고 이렇게 하는 것을 미리미리 예방할 수 있는 그런 소통을 이런 지역의 신문에서 이룰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걸, 첫날 강의를 들으면서 꿈꾸어 졌거든요. 오늘도 원장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이런게 가능하겠다 확신을 가지는 단계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정말 참가했는데, 좀 그런데요. 운영에 대해서 자세히는 모르겠더라구요. 그런데 그런 좋은 사례들이 유럽에서도 보면 금융위기를 겪지 않는 게 이런 협동조합 때문에 겪지를 않는다는 기사를 보면서, 그거 보다도 훨씬 더, 어떻게 보면 실행할 수 있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둔다면 할 수 있는 일이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병유

지역에 보면 여러 가지 신문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 사실은 말이죠. 저는 언론의 영향이 바로 이렇게 까지 되는구나.. 이런 거를 직접 겪어봣어요. 정의는 정의대로 나가고 진실은 진실대로 나가야 되는데, 그것이 나가다가 누구의 의해서 꺾이는 모습들을 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걸 당사자로 그걸 겪어봤고 그래서 정말 진실과 정의를 이야기하고 누구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는 그런 것들이 좀 나올 수 있는 신문이 바로 뭐 전체적인 사회속에서 쉽지 않지만 작은 지역에서 그만큼 부천이 역동적인 도시니까 그런 걸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내일신문 초창기 출자 참여했었는데, 거의 아시다시피 내일신문은 교육쪽으로 가는데 학원중심교육으로 많이 가고있죠. 이런데 언론에 대해서 또 이야기가 되어서 꼭 한번 제가 아니더라도 이런 것들이 다음 후배들이나 세대에서도 꼭 필요하다 그렇게 느껴서 참여하게 되었구요. 한 가지는 또 아시다시피, 저는 어떻게 보면 되게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한 직장에서 34~35년 근무했다는 것은 사실 되게 문제가 있는 거거든요. 사실은… 전 그런데 그 직장을 한번 바꿔보자고 그래서 저는 85년도 그때 막 지역으로 학생운동 하면서 지역으로 내려가면서 노동자들의 의식이 깨어야 우리 사회가 바뀐다. 그래서 거기 참여하게 되었고, 신한이란 곳에서 87년도 파업을 주도해서 노동운동을 시작해서, 그런데 우리 사회가 지금 그런 거 같아요. 노동이란거 육체적인 노동에 대해서는 되게 사회적으로 분위기 속에서 상당히 밑바닥으로 놓는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사실 학력문제가 이렇게 올라와 있는거고, 결국은 학력이라는 거는 많이 가리키는 거는 좋은 대학이라던가, 거기 가면은 화이트칼라로 가고 그런 거 때문에 교육열이 높지 않은가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사람의 개성이라는거, 사람의 특성이라는 건 다양하거든요. 그것을 사회에서 받아줄 수 있는, 그런 교육으로 가야하는데, 그 이야기를 하는 언론이 사실 부족하다는 거죠. 그런 역할들도 부족하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좀 해서 노동의 가치, 땀의 가치가 정말 사회에서 존중받고, 존중 받는다기 보다 가치, 이것도 육체적인 노동도 정신적인 노동과 같이 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데, 언론이 좀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꼭 한번 이거는 오랜 기간 동안, 사실 여러 가지 많이 했지만, 이것 만큼은 꼭! 근데 제가 한 거는 다 성공했는데, 이것만큼은 더 성공하고 싶구요. 끝까지 다 참여하겠습니다.




문종길

저는 아까 그 비전을 이야기하시는 걸 듣고, 정말 이 지역 언론을 살림으로써 그렇게 큰 비전을 실현할 수 있다는 그 뭐라 그럽니까. 희망 같은 걸 보고 대단히 참 놀라웠습니다. 정말로 지역 언론을 제대로 살림으로써 지역 주민들의 어떤 문화를 살리고 나아가서 지역 주민들이 민주 시민으로써 커 간다면 그 분들의 인간다운 삶도 가능하고, 더 나아가서 그런 큰 비전을 실현시킬 수 있으니까 참 좋겠다. 참 희망적이다. 뭐 어찌보면… 뭐랍니까. 정말 구체성이 보이는 그런 비전인거 같다는 걸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면서 과연 그러면은 그 내가 가지고 있는 비전은 무엇인가… 이런 생각도 조금 해봤습니다. 저도 아까 여기 박혜숙 선생하고 같이, 현직 교사입니다만은, 연구소라는 걸 같이 열긴 열었는데 제가 현직에 얽매이다 보니까, 마음대로 펼치지는 못하는데, 아 그 연구소도 비전을 가지고 좀 운영을 해야 되지 않느냐 이런 생각까지 한번 해봤습니다. 어쨌든 지역 언론을 살리는 이런 조그만 일이 큰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봤습니다.




장동혁

예 저는 여기 교육관련 종사자분들이 많은신데, 저는 교육부분에서 이렇게 막 제대론 된 교육, 큰 넓은 의미에서 교육 쪽은 제 능력범위에서 넘어간다는 생각이 있었구요. 일반적으로 좁은 의미에서의 교육, 즉 공부를 잘하자는 관점에서도 학교에서나 학원에서 지금 말하는 게, 틀린 상황입니다. 공부법을 말하지만 사실 성적조차도 나오지 않아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전에 강사 한명이랑 이야기한게 그럼 과외하는 우리한테 더 편한게 아니냐는 말도 했는데요. 편하긴 한데 점점 이상한데로 돌아가니까. 사실 기본만 딱 하면 성적이 딱 나오는데, 실제로 빨리빨리 성장할 수 있어요. 여기 오게 된 계기는 제가 한효석 선생님 제자인데요, 앞으로 애들과 공부하면서 아이들이 느낀 사례를 신문에 담아내면 좋은 학습법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이경재

저는 이 자리에 와서 제 인사를 못했어요. 이경재입니다. 나이가 젤 많은거 같아요. 지난번에 김주완 선생님께서 어떻게 왔냐구 그러는데, 저는 지금까지의 사고는 동업하면 자본주의 논리로는 망하는 겁니다. 저는 부동산 전문가인데. 타블로이드 판 신문을 만들어봤어요. 필요에 의해서 조선일보 부천지국장 출신으로, 청년 때 광고로 건설업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경매 업무가 20년인데, 전 전국구라 불립니다. 그런데 왜 신문 만들었냐? 사실 벼룩시장 주원석씨도 잘 아는데요. 벼룩시장이 부천에서 자리 잡은게 때를 만나서 잘 된 거죠. 3D 구직이 어려웠다. 부동산이 90년에 어려웠죠. 그 상황에 벼룩시장이 성공했죠. 하지만 다른 비슷한 신문들은 만들었다가 문닫았어요. 부천서 첨으로 부동산 중개 법인회사를 세웠는데요. 벼룩시장 1년 광고 5단통 광고를 하니 이 광고비가 비싸, 아주 많이 들어요. 한달에 120만원인데, 벼룩시장 손님 질이 낮아요. 길가에 있는거라 부동산 경매는 돈 있는 투자자 신문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어요. 격주로 문광부에 신문을 신고하고 ‘수도권부동산정보은행’ 신문을 만들었어요. 나는 부동산 이론가라 글 쓰고, 나머지는 경매 물건을 실었어요.. 타블로이드 판 8면 4년 해 보고, 벼룩시장에 120만원 광고비 냈는데, 그거 보다는 신문을 만들어서 돈이 어디있을까? 기업하는 사장님들 한의원 원장들에게 신문을 고정으로 보내고, 고객이 확보 되어서 나았죠. 그러고나서 요즘은 지난번 부동산이 아예 활화산이라 그 신문을 못 만들어요. 부동산이 불경기라 신문을 안 보죠. 그럼, 협동조합. 왜 여기에 참여하게 되었는가. 지금까지는 제 소개였구요. 요즘 신문이나 밖에서 방송을 보고 있으면 열이 나니깐. 이거 안 볼 수도 없고 보면 열나고 인터넷이나 몇 가지 뉴스뿐이에요. 한효석 원장이 아 정론지를 한번 만들어서 마음이 있는 사람들끼리 신문을 하면 저변확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서 지금 기자로 참여는 안 되고, 글을 쓸 수 있는 재주도 없지만 많은 이들이 보고 정의롭고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이 바로 실리는 신문을 만든다면 출자를 하고 힘을 보태고 싶어요…



박인수

저는 편집디자인이 재밌어요. 결혼하기 전에는 직장에 놀러다니는 기분으로 다녔는데 결혼 하고나니 피곤해요…. 그래도 일이 참 좋아서, 여태까지 해요…. 나이가 좀 많이 들다보니깐 나 혼자 즐거운 게 아니라 남하고 같이 즐겁게 할 수 없을까, 하다보니 한효석 선생님을 알고 여기까지 왔네요. 신문을 만들게 참석하게 된 거는 협동조합 하면 할수록 어렵게 느껴지지만 신문은 제가 보탬이 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별로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우리 동네에서 이런 신문이 있으면 좋겠어요. 엄마들 직장 다니다 쉬게 되니깐 동네 와보니 동네 분위기가 있어요. 좀 서로서로 막혀있는 게 풀리면 좋겠어요. 아이들 인성이 사실은 엄마들의 영향이 크죠, 그런 문제가 소통되었으면 해요.




권미선

일단 저번에 잠깐 인사했는데요. 그냥 쉽게 말하면 지역공동체가 생기면 좋겠어요. 바람직한 교육, 문화를 만들면 좋겠구요. 계속 자란 부천이니깐 일단 시작하고 싶어요. 아까 한효석 원장님이 강의를 들엇는데, 사실 협동조합이 초기와 정착단계 과도기 하나도 쉽지 않은데 궁금하고요. 걱정이 되진 않은데, 협동조합을 하고 있으니깐 좀 더 걱정이 되는 거 같아요.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신문사인데 공동으로 소유하는데 조합원과 비조합원 차등을 어떻게 둘 것이고,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참여의식 약화문제, 그런 것들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이야기 나누면 좋겠어요.




이현주
저는 지역주민이라기 보다는 그 기반에 홍보담당자로서 고광동 마을 신문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복지사로서 공부는 했지만 지역신문이나 요즘 화두인 협동조합은 잘 몰라요. 강의 참여해서 많이 배웠고 제가 만들고 있는 신문에 많이 도움이 되고 기자 분들과도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서, 도움이 되었어요.




오산

호기심 많은 지역 활동가인데요. 해보고 싶은 일. 신문 만드는 거 하고 싶어요. 관심을 가지고 5년 정도 마을신문 만드는 일에 관여했는데요. 자기 뜻을 전하는 수단으로써 매체를 선택했죠. 그러고보니 일했던 곳에서 항상 신문을 만들었어요… 학원 운영할 때도 그랬고요. 무의식적으로 그래요. 그런데 만들었는데 항상 실패했어요. 혼자서 모든 걸 다 기획하니 능력에 한계가 오고 MS에서 나오는 퍼블리셔로 자가발전해서 A3로 접으면 나오는 신문 만들고 출판도 해보고, 그랬어요. 이제 마을 신문이 지역 복지관에서 나오는데요. 내 매체로서 활용이 가능할 거 같아요. 지금 오 년째 해오고 있고. 중간 비전 제시 한 거 같아요. 마을 주민들이 기사들 써서 인물들만 모아서 인물전, 환경전. 이러 식의 백서 단편 간행물 만들고 싶고. 제 마음인데, 그럼 여기 왜 왔냐. 이 누군가가 일을 담당해서 한 두명 정도는 먹고사는 문제 해결하면 좋겠어요. 다 반반 담구고 있으니 이도 저도 아닌게 되요. 어떤 그릇을 가지고 마을 기업, 영세 상가의 광고매체, 사업 안내, 신문 보는 이들이 고객이자 독자. 거기에 자원봉사로 일하면 안 되구요. 전업으로 한 두명 동네에서 먹여살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 협동조합 접목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인데요. 내가 발행인인데 먹을 구조 만들기에 내 자신이 두렵고 그 그릇을 협동조합이란 것으로 담아볼까… 하는 과정이에요.




권혁철

춘의동 영구임대단지 춘의종합사회복지관에서 15년 일했어요. 72년부터 부천에서 살았구요. 처음 이사 온 동네가 약대동, 호색호 있는데 근처죠. 지금은 원미동 근처 살고요. 휴가라 맘편하게 왔습니다. 앞으로 영구임대 단지 주민의 이야기 언론에 실리는 건강한 지역신문 만들기가 비전이에요. 가난하고 소외된 주민이 기자로 활동하면 좋겠어요. 기자가 이미 강남 출신 70%이상이라 지들 이야기 만 쓰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언론에 없아요. 복지관에서 마을신문 만든 적이 있어요. 최초로 했지만 그러나 실패라고 생각해요. 그 당시 임대 단지, 주민들의 이야기를 다른 주민들이 알았으면 좋겠구요. 사실 단지 사람들이 집 밖을 나오지 않아요. 2,500명 중에 1,100명이 장애인인데 그 안에서 살아요. 주변 지역 사회는 임대단지를 괴물이나 이상한 동네로 생각하고 왕래가 없어요.. 신문을 공유하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쉽지 않아요. 인문학 강의로 한효석 선생님이 글쓰기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잘 안되요. 마을 신문을 접었죠. 마을에 어떤 분이 있는데 파킨슨 병으로 손을 떨고 떨리는 손으로 글을 써요. 띄어쓰기 맞춤법 다 아니지만, 실어달라고 하면 어디 실을 곳도 없고난감해요. 이걸 쓰기 위해 며칠밤 한달 이상 고민해서 써온 글인데 그냥 남아있는 게 안타까워요. 마을 신문에 담는게 어떨까. 앞으로 지역 신문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은 보수에 투표한다는 것을 바꾸고 싶어요.



최현철

담쟁이 사무국장 3월부터 일했는데요. 가끔 여기 어떻게 왔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있어요. 경영학을 전공하고 일반 회사에서 5년 일했어요. 서른 살에 지역활동가가 되려고 마포공도체라디오에서 일하고 민중의 집에서 일했는데, 상처를 받았어요. 너무 힘들고 희망이 뭐가 있나 너무 힘들어 시골 내려가서 농사나 짓고 숨어야겠다 싶었어요. 그러다 어떤 분이 여기 가면 돈도 좀 주고 맛있는 밥도 준댄다. 요양한다고 생각하고 1년 가 있어라 해서 왔죠. 그런데 한효석 선생님이 듬직해요. 절대 실패하저나 안 된다는 말 하지 않아요. 여기서 지내면서 기운차리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이런 분들과 일하면서 이야기 듣다 보니까 막상 만나서 이야기하니깐 같은 생각 이런 고민하는 사람들 있구나 싶어 계속 이야기하고 싶고, 밤에 잠이 잘 와요. 그러다 이경재 선생님 말대로 뉴스나 신문을 보면 밤에 잠이 안 와요. 광화문 달려가야 하나. 번뇌하죠. 그래도 여기서 하나하나 만들어나가면서 큰 것도 고민하고, 다양한 사람들 만나고, 그런 상태에 있고 신문하면서 그런 사람들 만나는 게 행복해요. 이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 듣는 게 좋아요.




오기종

지난 4주간 지역 신문이나 협동조합 잘 몰라서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왔어요. 지역 언론에 대한 거시적인 비전 제시를 하기엔 제가 부족하구요. 이 동네에만 20년 살았는데, 지역 언론을 만든다면 뭘 실으면 좋을까 고민해요. 어 최근 10년 사이에 부천 전체 까진 모르겠는데, 너무 많이 변하는 거 같아요. 배드타운 같구. 약대동도 그렇구 상동. 저쪽 춘의동도 학교 다닌 곳인데 재개발. 군대 다녀오니 두산위브가 생고 대학교 땐 기숙사 가 있는데 부흥중 앞에 공장 주택 다 헐어지고, 급격한 변화로 사람들이 스트레쓰 받고 변화하는 마음이 생겨요.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재개발 이상, 공사 소음. 일조건 투쟁으로 저희는 보상도 못 받고, 그런 변화하는 부천 이야기를 실어보고 싶어요. 또 하나 부천 산다고 하면 친구들이 놀리는 게 정체성이 없다는 거에요. 부천은 자고 인천이나 서울 출퇴근 하는 곳 아니냐. 경남도민일보 수업을 듣고 느낀 게 큰 지역이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라던가. 뭐 하는지도 서로 몰라요. 좀더 사람 사는 이야기 많이 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애향심까지는 아니어도 아무 느낌없이 사는게 아니라 나의 살고 있는 터전, 고장이라는 마음을 심어주면 좋겠습니다.




황선구

안녕하세요. 수업시간에 제 소개를 못해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황선구이구요. 성공회대에서 신방과를 전공했습니다. 김서중 교수님과 최현철 사무국장의 소개로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나이는 젤 어린데, 스무살입니다(사방에서 환호성과 박수). 저는 부천에 연고가 없습니다. 집은 제천이고 살고있는 곳은 송파인데요. 학교에서 소개해서 왔는데, 부천이라는 지역에 토박이도 있고 오래 거주한 분이 많은데, 지역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지역에 대해 배우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참가하고 싶습니다. 학교에서 1년학년때 학보사에서, 취재기자를 했는데 뉴스를 보는 수용자와 만드는 생산자 입장을 동시에 겪어보니 둘의 입장이 천지차인걸 알게되었습니다. 직접 자기가 뉴스를 만들어내면 좀 더 주체성과 책임성을 가지고 자기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고민하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